수행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고난과 번뇌의 강을 건너기 위해 첫 발자국을 내딛는 것으로 매우 고귀하면서도 동시에 강한 결심과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수행을 왜 하는가? 짧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행복의 길로 가고자 하는 것 아니겠나? 그 행복의 길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과 몸을 객관적으로 관찰 해 나가면서 단계별로 체험되는 지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수행의 길은 우리의 무의식에 저장된 습관적 패턴을 제대로 분석해 우리를 괴로움으로 인도하는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괴로움에서 벋어날 수 있도록 우리의 습관적 패턴을 옯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다른 말로 수행은 우리 자신의 발견이라고도 말한다. 궁극적인 행복은 우리 자신 안에 있으므로 아무리 바깥에서 찾아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우리 불자들로선 이미 많이 들어본 소리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마음안에 저장된 번뇌와 애착들이 하나, 둘씩 발견되는데 그런 것들로 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마음의 정화가 실현된다. 마치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 때 먼저 돌들을 캐내야 하 듯이 우리 마음안의 거친 번뇌들 부터 제거해야 더 깊은 수행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된다.
우리 자신이 수행을 통해 우리의 번뇌를 제거 할 수 있고 그로인해 예전보다 더 의미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수행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우며 희망스러운 소식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평생동안 쌓아 온 자신의 번뇌와 집착을 한번에 제거한다는 것은 쉽지도 않거니와 그 제거 과정에서 심한 불쾌함이나 때에 따라선 큰 고통을 체험하기도 한다.
오래전 첫 장기간 집중수행을 할 때 내 마음속 깊이 묻혀져 있던 번뇌와 집착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한동안 적지 않은 혼동과 시련으로 힘들어 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당시 난 마치 인생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즉 고귀하지만 외롭고 힘든 수행자의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욕망과 쾌락으로 물들었지만 편하고 아직도 많은 애착이 남아있는 번뇌의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는 욕망의 세계를 등뒤로 하고 수행에 몰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름답고 화려한 속세의 유혹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비록 몸은 가부좌틀고 방석위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세상과 철저히 고립된 외로움과 세속적 쾌락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으로 바람 속의 갈대처럼 휘청거리며 어둠속에서 방황하였다.
세속의 쾌락과 욕망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오직 지속적인 수행정진을 통해 애착대상들의 비영속적 성품을 통찰하고서였다. 세속적 현상들의 허무함을 직시하니 예전에 집착한 대상들이 얼마나 고달프고 피곤한 것인지 알 수 있었고 그런 욕망과 쾌락으로 가득 찬 속세와 고립된 것이 외롭게 느껴지기 보단 오히려 안락한 피신처에 도달한 것 처럼 다행스럽고 평온하게 느껴졌다.
비록 수행중 역경과 난관에 부딫혀 힘들 때가 있지만 그것은 괴로움의 원인인 우리의 번뇌를 제거하고 더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마치 곪고 부패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고통스럽더라도 그 부분을 칼로 도려내야 하 듯이 우리 마음의 노폐물 또한 통찰지혜를 통해 제거해야 한다. 그 과정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포기해 버리면 곪은 상처를 치유하지않아 더 깊이 썩어들어 가는 것과 같이 고통에서 벋어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수행의 길은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라 단순함에서 오는 평화를 실감시켜 주는 고귀한 길이다. 수행의 길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고통을 옯바르게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시켜 주는 훌륭한 길이다. 수행의 길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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